엽문(葉問)은 요절한 홍콩의 쿵푸 스타 이소룡(李小龍)의 스승이다. 중국 남권(南拳)을 대표하는 영춘권을 세계화한 주인공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개봉한 영화 ‘엽문’으로도 유명하다. 이소룡의 절권도, 그리고 ‘오직 실행만이 삶에 활력을 준다’는 그의 명언은 엽문의 가르침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영춘권이 새해 홍콩의 희망으로 부상하고 있다.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자신감’을 심고 있어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날 일이다. 홍콩의 빅토리아 공원에 60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영춘권 도장이 홍콩 마사회 후원을 받아 개발한 ‘할 수 있다 체조(can-do exercise)’ 를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잠시 후 나타난 사범은 엽준(葉準). 엽문의 아들로 전 세계 영춘권의 대부다. 그가 구령을 시작했다. 한데 구령이 숫자가 아닌 단어였다. 그가 ‘시우(笑)’하자 모두 손을 내리고 몸에 힘을 뺐다. 동시에 얼굴엔 웃음이 감돈다. 두 번째 구령은 ‘하우(口)’. 수련생들은 손을 어깨까지 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띤다. 다음은 ‘샹(常)’. 어깨까지 올라간 양손은 가슴 앞으로 구부러지고 마지막 ‘호이(開)’ 구령에는 두 주먹이 힘차게 가슴 앞으로 나간다. 네 자의 구령을 합해 보니 ‘항상 입을 열며 웃는다”는 뜻이다. 웃음이 행복의 시작이고 가능성의 시작이라는 의미라고 사범은 설명했다.
체조는 영춘권법의 변형이다. 몸과 마음을 풀 수 있는 손 동작으로 구성됐다. 두 번째 네 자 구령은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자는 뜻의 쿤틴헤이보(今天起步)다. 여기까지가 1장이다. 동작이 계속되는 동안 수련생들은 얼굴에 미소를 놓쳐서는 안 된다. 2장의 구령은 12자, 즉 도로우도탁(多勞多得)·얏펀강왕(一分耕耘)·얏펀사우웍(一分收穫). 일한 만큼 소득이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자는 의미다. 체조는 이런 식으로 10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장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는다. 4장은 학업, 6장은 사업, 7장은 사랑, 9장은 건강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홍콩도 할 수 있다(Hong Kong can do)로 끝이 난다. 체조는 5분여 만에 끝났지만 수련생들의 얼굴에 생기가 분명했다. 회계사인 보우찬은 “실적 부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날아갔다”고 했고 주부 재니는 “우울증이 사라졌다”며 웃는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이 체조를 익힌 홍콩인이 5000명을 넘었고 새해 목표는 10만 명 이상이다. 한번 익히면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구령에 따라 몸도 풀고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수련자들의 반응이다. 엽준 사범이 말했다. “국제 금융위기 이후 시민들의 얼굴에 생기가 사라진 걸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때 자키클럽에서 ‘홍콩도 할 수 있다’는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고 권법 체조를 개발했지요.” 요즘도 그는 시간만 나면 공원이든 거리든 시민들이 모인 곳을 찾는다. 그리고 구령을 외친다. “새해에 넌 할 수 있어”라고. 최형규 홍콩 특파원
출처: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484/3952484.html?ctg=1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