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中 시진핑 부주석 방한
- 직책에 맞추자니 '차기대권 유력' 국빈 대우 하자니 '저자세 외교'
시진핑 예우 고민되네
- 시진핑(習近平·56) 중국 국가부주석(이하 부주석)이 오는 12월 16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찾는다. 12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예정된 아시아 4개국(한국·일본·캄보디아·미얀마) 순방 일정의 하나다. 시진핑 부주석은 당초 일본을 거쳐 17일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일정 조율을 거쳐 방한 일정이 하루 앞당겨졌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월 17일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시 부주석과 조찬 회동을 할 예정이다.
시 부주석은 지난 2005년 저장성(浙江省) 당서기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적이 있으나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와 외교통상부도 ‘거물급’ 손님맞이 준비로 부산스런 모습이다. 시진핑 부주석은 오는 2012년 퇴임 예정인 후진타오(胡錦濤·67) 현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차기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로 가장 유력시되는 인물이다. 만약 시 부주석이 큰 이변 없이 후진타오의 권력을 잇는다면 2012년부터 향후 10년간 ‘시진핑 천하(天下)’가 펼쳐지게 된다.
독일·일본 등도 국빈급 예우
현재 우리 정부에서는 시진핑 부주석의 의전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시진핑 부주석을 어느 선에서 맞이하는가” 하는 문제다. 외국 정상이 아닌 부주석(부통령급)의 경우 대개 국무총리실에서 초청하고 대통령이 접견하는 것이 관례지만, 시진핑 부주석의 경우 ‘잠재적 파워’가 직책을 넘어선다는 데 고민이 있다. “중국의 차기 최고 권력자를 직책으로만 대접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시 부주석이 지방 당서기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도 이해찬 총리를 비롯해 문희상 국회의장, 반기문 외교부장관 등이 나서 파격적으로 맞이했었다.
시 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대중 투자에 나선 국내 대기업 총수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 부주석을 따로 만날 기회를 잡기 위해 온갖 루트를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도 “부주석이 오는 만큼 경제단체에서도 나와 밥도 사고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난 2005년 방한 시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그를 만났었다.
정부에서는 이번 시진핑 부주석의 방한을 준비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전례도 참조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부주석이 지난 10월 유럽 5개국을 순방하면서 독일을 찾았을 때는 메르켈 총리가 직접 그를 맞이했다. 또 지난해 6월 북한을 찾았을 때도 병색이 완연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만나 회담을 가졌다. 이번 방한에 앞서 먼저 방문할 예정인 일본에서도 시 부주석에 대해 ‘국빈급 예우’를 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명보(明報) 등 중국 현지 언론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물론 아키히토 일왕도 시진핑을 만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류우익 밀착수행은 저자세 외교?
청와대가 대통령의 유럽 출국 당일 시 부주석과의 조찬 회동을 마련한 것도 외국의 이 같은 ‘접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류우익(59) 주중 대사(내정자)가 직접 시 부주석을 ‘영예수행’토록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예수행은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사절이 귀빈을 밀착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청와대는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과 시 부주석이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점을 감안한 조치”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시진핑 부주석은 이번에 국회 방문도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주석에 ‘밀착수행’까지 붙이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시진핑 부주석은 △국가부주석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당교 교장 등 무려 4개에 달하는 공식직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권력의 핵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내의 권력서열은 6위에 불과하다.
- ▲ 후진타오(위)와 시진핑 / photo 조선일보 DB
국가부주석이란 직책 역시 △통수권자인 중앙군사위 주석(후진타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후진타오) △집권당의 대표격인 공산당 총서기(후진타오)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우방궈) △행정부 수장격인 국무원 총리(원자바오) △각 정파의 대표격인 정치협상회의 주석(자칭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선전·이데올로기 담당(리창춘)보다 서열상 아래다.
권력서열 6위에 불과한 국가부주석 정도라면 정운찬 국무총리 선에서 맞이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접견하는 게 관례에 맞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시각에서는 ‘밀착수행’ 운운하는 정부와 청와대의 태도가 ‘저자세 외교’일 수밖에 없고, 이런 ‘저자세 외교’ 때문에 중국이 우리를 깔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한 한승수 전 총리는 후진타오 주석은커녕 원자바오 총리도 못 만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중국 전문가는 “부임한 지 채 2년도 안 된 신정승 주중대사를 조기 강판시키고 대통령 측근인 류우익씨를 대타로 내보낸 배경에는 이러한 해프닝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시진핑 부주석을 너무 극진히 대접할 경우 후진타오 현 주석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 부주석과 후 현 주석이 일종의 정치적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때문에 시 부주석을 지나치게 환대할 경우 당연히 후 주석의 불쾌감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교통정리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실제 시 부주석은 지난 9월 개최된 공산당 17기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원회(중군위) 부주석’직에 안착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중군위 부주석으로 선출되지 못했다. 군(軍)을 통솔하는 최고권력인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중군위 부주석’직에 올라 군부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해야 한다.
당시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후계구도가 일찍 확정될 경우 현직에 있는 사람(후진타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며 “오는 2012년 국가주석직 퇴진을 앞두고 레임덕이 일찍 찾아올 것을 염려한 후진타오와 그 직계 세력의 견제”라는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시진핑 견제하는 후진타오 자극할 수도
시진핑 부주석 스스로도 최근 해외순방 기간 중 후진타오 주석과 미묘한 갈등을 드러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0월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와 만났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시 부주석은 공식석상에서 장쩌민 전 주석의 친필서명이 적힌 영문서적 2권을 메르켈 총리에게 전달하며 ‘장 전 주석’의 안부를 전달했는데, 중국일보 등 현지 언론은 “시진핑 부주석이 (후진타오 주석이 아닌) 장쩌민 전 주석의 안부를 메르켈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대만과 홍콩 언론들도 ‘시진핑과 후진타오’ ‘후진타오와 장쩌민’ 간 삼각관계에 대한 각종 추측성 보도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들도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가 현 지도자(후진타오)가 아닌 전 지도자의 안부를 전달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평을 했다. 후 주석도 자신의 후계카드로 시 부주석보다 자신의 최측근인 리커창(李克强·54) 부총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부주석에 이은 권력서열 7위의 리커창 부총리는 후 주석과 호적상 동향인 안후이성 출신에다 공청단 제1서기를 역임하는 등 후 주석과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쳐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는 인물이다.
시진핑 부주석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쩌민(江澤民·83) 전 주석의 최근 행보도 심상치않다. 장 전 주석은 지난 10월 1일 중국 건국 60주년 국경절 열병식 때 8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톈안먼(天安門) 누각에 후진타오 주석을 포함한 현 지도부와 나란히 등장했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퇴진한 전 지도부가 현 지도부와 함께 공식행사에 나타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중국 관영 CCTV는 장쩌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전국으로 생중계했다. 장쩌민 전 주석은 후진타오 현 주석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장쩌민 계열의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를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은 후 주석 취임 후에도 “쩡칭훙(曾慶紅·70) 전 부주석에게 국가주석직을 이양할 것”을 요구하며 ‘반기(反旗)’를 들기도 했다. 현지 언론이 이를 ‘장후(江胡·무협지의 배경인 강호(江湖)와 발음이 유사) 전쟁’에 비유할 정도였다. 장 전 주석의 최측근이자 태자당의 좌장격인 쩡칭훙 전 부주석은 시진핑 부주석을 권력의 핵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입성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여태까지 중국의 정권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이번 시진핑의 동북아 순방 기간 동안 그가 중국 국내 정치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후진타오 후계 구도
“제2, 제3의 차기주자들도 약진 시진핑 앞날 순탄치만은 않을 듯”
시진핑의 ‘대권 승계’ 전망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시진핑 부주석이 해외 순방을 하며 밖으로 나도는 사이 차기 경쟁에서 낙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중국에서는 후진타오 주석의 직계라고 할 수 있는 ‘단파(團派ㆍ공산주의청년단 출신 정치세력)’ 계열 인사들이 지방요직을 야금야금 접수하면서 중앙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리커창 부총리와 함께 후진타오 주석의 또다른 측근으로 분류되는 후춘화(胡春華ㆍ46) 허베이성 성장은 최근 소수민족 자치구인 네이멍구(내몽골) 당서기로 부임하며 권력의 핵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입성에 가까이 다가섰다. 후 주석과 동성(同姓)인 후춘화 네이멍구 서기는 후진타오 현 주석이 시짱(티베트) 자치구 당서기로 있을 때 시짱 공청단 부서기로 근무한 전력이 있다. 중국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광둥성 최고책임자 왕양(汪洋ㆍ54) 당서기도 중앙 진출이 점쳐진다. 왕양 광둥성 서기는 후진타오와 동향인 안후이성 출신으로 공청단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는 후진타오의 직계다. 만약 이들이 중앙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경우 시 부주석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 ▲ (왼쪽부터) 후춘화 / 왕양 / 보시라이 / 왕치산
- 시진핑이 속한 태자당(太子黨ㆍ공산당 간부 자제, 친인척 정치세력) 내부의 차기 경쟁도 치열하다. 시진핑은 시중쉰(習仲勳ㆍ사망) 전 부총리를 아버지로 둔 대표적인 태자당이다. 최근에는 보시라이(薄熙來ㆍ60) 충칭(重慶)시 당서기도 조폭과의 전쟁을 주도하며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다. 보시라이는 덩샤오핑과 함께 8대 원로로 불리던 보이보(薄一波·사망)의 막내아들로 역시 태자당을 대표하는 인사다. 더욱이 보시라이는 최근 공산당 원로간부들로부터 차기 총서기감으로 종종 거론되고 있다.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지난 11월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해 미·중 경제전략 대화를 이끈 왕치산(王岐山ㆍ61) 부총리도 후계구도에 가세했다. 특히 왕 부총리는 오바마 미 대통령과 농구공을 들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며 연일 주가가 치솟고 있다. 왕 부총리 역시 부총리를 역임한 야오이린(姚依林ㆍ사망)을 장인으로 둔 태자당의 일원이다. 또한 왕 부총리는 오는 2010년 열리는 상하이 엑스포를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비중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왕 부총리는 원자바오 총리의 후임으로도 종종 거론된다. 홍콩의 한 언론인은 “중국 공산당의 후계자 선정 역사를 살펴보면 양대 세력이 격돌하는 가운데 종종 제3세력이 끼어들어 최종 승리자가 됐다”며 “천하가 누구 손에 들어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제3세력 출현 가능성도 시사했다.
출처: 주간조선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5/2009121500857.html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